(주의! 약 스포일러 포함)
개인적으로 더 배트맨이 개봉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애초에 DC 코믹스의 배트맨의 어둡고 고독하며 심리적으로 고뇌하는 분위기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또 배트맨이 가진 다크 히어로적인 면모도 좋았다. 선한 영웅 캐릭터에서 잘 볼 수 없는 무엇인가 결핍된 영웅이라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그것은 팀버튼의 <배트맨> 시리즈와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나이트> 3부작에서도 잘 드러나는 점이었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취향 저격 제대로였다. 완전히 내가 기대한 영화는 아니었으나, 내 기호에 맞는 영화라서 만족했다.
1. 스토리 (8/10점)
리들러가 고담 시장 돈 미첼을 살해하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고든은 수사에 배트맨을 부르고, 현장에서 배트맨은 리들러의 편지를 발견한다. 리들러는 편지에 적힌 수수께끼를 통해 배트맨에게 끊임없이 말을 건다. 리들러는 계속해서 범행을 이어나가고 그 때마다 배트맨은 수수께끼를 풀면서 고담 시에 숨겨진 진실에 한 발자국 다가간다. 처음엔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그것을 풀었던 배트맨은 리들러가 일으키는 범죄와 그가 말하고자 하는 진실에 자신이 관련됨을 깨닫기 시작하면서 영화는 피날레를 향해 나아간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할로원 기간 동안 일어나는 사건을 배트맨이 해결해나가는 구성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스토리 전개에서 인과관계가 이상한 부분은 크게 없었다. 아쉬운 부분이 없진 않다. 스토리 전개가 기존 히어로 영화의 방식과 조금 달라서 우리에게 익숙한 액션히어로영화를 기대하고 간 관객들은 매우 지루하고 괴로울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장례식에서의 테러 이후 기절한 배트맨의 복면을 이 악물고 벗기지 않은 경찰들의 행동은 조금 어색했다. (왜 신원확인을 하지 않지?) 또한 협력관계였던 셀리나 카일(캣우먼)이 왜 갑자기 배트맨에게 연정을 품는 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 부분을 더 설명해줬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한다. 또 마지막 고담 스타디움에서 리들러의 추종자를 쓰러뜨리는 과정에서 발생한 깨달음과 사고의 전환이 갑작스럽지 않았나 생각한다. 리들러 추종자의 "나는 복수다"라는 그 말 한 마디에 충격을 받고 생각과 행동을 달리하는 데, 그 부분을 조금 다른 식으로 표현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2. 캐릭터 (7.5/10점)
이 번 영화는 배트맨의 어둡고 개인적인 내면을 더 파고든다. 영화 초반, 고담 시의 비 오는 할로윈 밤에 배트맨이 정찰을 하며 독백하는 장면에서 그것이 잘 드러난다. "고담관찰일지 2년 차...." "고담의 범죄는 더 심해졌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다.." 이런 장면은 마치 <택시 드라이버>의 주인공 트래비스가 되뇌이는 독백과 유사하다. 그래서 배트맨이 어떤 생각과 감정을 품는 지 명확히 알 수 있었다. 또 작중 범죄현장에서 단서를 분석하며 추리를 시작하는 배트맨의 모습에서 탐정의 면모가 잘 드러나는데, 이런 점이 이전 영화의 배트맨과 차별성을 주기에 매우 흥미로웠다.
<더 배트맨>은 배트맨에 집중한 영화였기에 그 외의 인물들이 기존 배트맨 작품들에 비해 크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펭귄과 캣우먼은 아직 완전체가 아닌 듯 보이며, 팔코네는 브루스웨인의 과거를 설명하기 위한 장치로 보였으며, 벨라 레알은 정말 공기 같은 존재감이었다. 리들러는 재개발이라는 허상의 희생자로서 불우했던 자신의 과거의 원인이었던 부패한 고담시를 벌하기 위해서 이 모든 일을 설계하고 실행하는 존재로 나온다. 경찰에게 잡혀 투옥된 다음 배트맨과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대화를 나눌 때까지만 해도 기분 나쁜 사이코적인 측면이 매력적으로 보였다. 작중에서 빌런으로서 역할을 충실히 했다. 그러나 그 이상은 모르겠다. 분명 빌런으로서의 역할은 충실히 수행했는데 기존 작품들의 빌런들과 비교되어서 그 존재감이 많이 떨어지는 측면이 있다. (‘더 배트맨’의 가장 큰 적은... ‘다크나이트’다.)
3. 비주얼(10/10점)
아아 이 영화는 비주얼의 끝판왕이다. 잭스나이더 감독처럼 비주얼을 잘 뽑아내는 감독을 좋아하는데, 맷 리브스 감독도 장난 아니다. 이 작품은 밝음이 희귀하다. 어둡고 비 내리는 할로윈 기간의 고담을 잘 표현했다. 몰입하다보면 정말 고담 속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배트맨의 현실적인 액션도 마음에 들었다. 넉다운 시켰는데도 불구하고 재차 갱의 얼굴에 주먹질을 날려 그를 짓이기는 액션은 정말 미쳤다. 장례식장 테러 이후 경찰서에 잡혀온 배트맨이 그곳을 탈출 할 때 옥상에서 패러슈트를 타고 건물 사이를 스쳐가는 장면도 기억에 남는다. 특히 배트맨의 불완전한 착지가 아직 미숙한 초창기의 배트맨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기에 더 그렇다. 배트카에 시동을 걸 때 야수의 울음소리가 연상되었고, 그 자체로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배트카를 타고 펭귄을 쫓으며 풀악셀로 주홍빛 거리를 질주할 때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펭귄의 차가 전복되고 그를 잡으러 불타는 붉은 빛 주위 배경 속에서 뚜벅뚜벅 걸어오는 배트맨이 차와 같이 뒤집혀있는 펭귄의 시점에서는 거꾸로 매달린 '박쥐'의 모습으로 보이는 장면도 인상깊었다. 아이스버그 라운지 클럽 복도의 어둠 속에서 소총 세례를 맞으면서도 마피아들에게 성큼성큼 걸어오는 배트맨의 액션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소총 총구 화염의 섬광만으로 조명을 대체하는 그 장면 말이다. (자꾸 배트맨 액션만 말하는데, 이건 내가 ‘빠’라서 그런 거 같다.) 아 리들러의 비주얼도 조디악 킬러의 모습처럼 괴기스럽고, 그의 각종 트릭 도구들도 무시무시하게 잘 만들어져있다.
4. 예술성(8/10점)
후반부 전투 이후 밀려오는 물살에 의해 스타디움이 수몰되고 사람들이 고립된 순간, 설상가상으로 무너진 천장에서 절반쯤 끊겨진 고압선이 튀어나와 시민들의 목숨을 위협한다. 그 때 배트맨은 자기 한 몸을 던져서(자기희생) 그 고압선을 끊고 차디찬 물속으로 추락한다. 물이란 것은 이승과 저승을 가르는 경계를 상징할 뿐만 아니라, 기독교에서 다시 태어남을 상징한다.(기독교인은 물로 세례를 받는다.) 그러니까 이 장면은 자기희생을 통해서 기존의 복수의 화신이었던 배트맨이 상징적으로 사망하고 새로운 배트맨이 태어나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다. 예시를 하나 들었지만, 이는 맷 리브스가 영화의 예술성을 염두하며 영화를 만들었음을 알 수 있는 하나의 예시이다.
5. 재미(8/10점)
개인적으로 몰입해서 즐겼다. 3시간인데 3시간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한 2시간 20분짜리 영화를 보는 기분? 감독이 편집에 공을 많이 들인 것 같다. 그러나 언급했듯이 기존 슈퍼히어로 영화의 재미와는 결이 다른 부분이 있다. 오락성에 치중한 영화가 아닌 것이다. 그런 점에서 2019년 작 ‘조커’와 비슷한 부분이 있다. (음... 액션이 조금 첨가된 조커식 영화?ㅎㅎㅎ)
기존 배트맨의 다른 모습과 더 어두운 면, 그리고 탐정물과 느와르 장르적인 향기가 물씬나는 영화이다. 이런 장르에 호감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매우 재밌게 볼 수 있다. 그러나 가벼운 슈퍼히어로 영화, 살짝 코믹 액션을 좋아한다면 불호를 느낄 확률이 매우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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