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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원 생존기

고독함

by 잉여인96 2022. 3. 26.

고시원에 가만히 누워 있으면 이 작은 세상에 나 혼자 남았다는 기분이 든다.

고시원이란 단어는 고독함과 동의어인가 보다.

세상 사람들 다 어디갔을까?

가끔 창 너머에 들리는 자동차 주행소리만이 바깥에 아직 사람이 남아있음을 말해준다.

고시원은 방음이 잘 안 돼서 옆 방 소리가 잘 들린다.

옆 방이 기침을 하거나 통화를 하거나 문을 열거나 복도를 걷는 발소리까지 다 들린다.

사람에 따라서 이게 짜증나는 일일 수 있으나 지금 내 상황에서는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그런 생활소음이라도 들리니 뭔가 고독함에서 벗어나는 느낌이다.

식사를 하러 공용주방에 가면 가끔 이웃들과 마주친다.

웬만하면 인사를 하려한다. 이럴 때 아니면 사람과 말 할 기회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같이 대화를 나누다보면 얼어있던 인간다움이 다시 해동됨을 느낀다.

그 짧은 대화가 전자레인지처럼 내 감정을 신속하게 데우는 것이다.

한 번은 주방에서 냉동피자를 데우려고 하는 데 한 노인 분이 들어오셔서 말을 거셨다.

발음상태가 좋지 않으셔서 말을 잘 알아듣지는 못 했으나, 피자에 대한 말을 하신 것 같다.

"아 예" 하며 멋쩍은 듯 대꾸하고 다시 냉동피자에 집중하려는데

노인 분이 갑작스레 말을 꺼내셨다.

"내가 빨리 죽어야 하는 데 나 혼자 이렇게 오래 살아서...."

순간 흠칫했다. 뭔가 마음이 불편했고 씁쓸했다. 그래서 내가 한 마디 덧붙였다.

"아이고 할아버지 라면만 드시면 건강 나빠지실 텐데, 괜찮으세요?"

순간 사회복지사도 아닌데 사회복지사처럼 행동한 것이다.

할아버지는 멋쩍은 듯 아무 말 없이 라면을 끓이기 시작하셨다.

나는 타이밍 맞게 냉동피자가 다 데워져 그것을 그릇에 담아서 방으로 돌아왔다.

값싼 냉동 피자를 씹으면서 생각했다.

나는 왜 할아버지가 말 한 죽음에 그렇게 반응한 걸까. 그 죽음이 고독함에서 비롯됐다고 무의식적으로 판단했고,

나아가 그 고독함이 나의 그것과 같은 것이서 그랬던 걸까.

질문에 명쾌한 답은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곰곰히 곱씹어보니,

나 스스로가 고독함에서 벗어나야함을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었고,

그것을 노인에게 말하는 것으로 대신함으로서 내 무의식이 나 자신에게 경고했다고 생각한다.

 

고독함에 시달라는 건 어쩔 수 없다. 인간이니까. 그렇지만 그 고독함에 취해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비생산적이다.

문득 조던피터슨 교수를 떠올린다. '법칙 2, 당신 자신을 도와줘야 할 사람처럼 대하라'

나 자신을 도와주고 나 자신과 협상하여 더 나은 내일을 만들기 위해 행동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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